방송국 PD, 배우가 되다 “연기를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박정민
‘백수광부'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나오는 인물로,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동명의 극단에서 12년째 몸담은 박정민은 한때 촉망받던 PD였으며, 현재는 교육 연극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수많은 연극 속 인물로 15년을 살아온 그가 말하는 진짜 연기란 무엇일까? 스크린과 TV에서도 만날 수 있으나, 여전히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박정민이 말하는 ‘배우'로서 살아온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하시는 일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저는 12년째 <백수광부>라는 극단에서 배우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2년부터는 <산타클로스>라는 교육 극단의 대표를 맡고 있죠. 주로 극단 소속으로 연극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드라마와 뮤지컬 활동을 해왔는데, 최근 정만식, 김병춘, 김민상 배우가 주축으로 있는 <바를 정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어요. 앞으로는 소속사를 통해 더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대표로 계신 교육극단 <산타클로스>로는 주로 어떤 공연을 하나요?
<산타클로스>는 강연을 하는 극단이에요. 교육 연극, 교육 뮤지컬, 롤플레잉 등의 공연을 만들어서 교육자 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어요. 그 시작은 2012년이었어요. 그때,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죠. 그래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학교폭력 근절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연극배우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들이 있겠냐?”는 의뢰를 받고, 미팅했죠.
제가 “보통은 1인 강연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한 사람이 말로만 전달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연극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입체식 강의로 전환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리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룬 교육 연극을 만들어 교장 선생님들 400분을 대상으로 두 번만 시험 강연을 해보기로 했는데, 평점이 98점 이상 나왔죠. 그래서 현재까지 120회가 넘는 강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장, 서기관, 교감, 장학사 등 고위급 관리자들이 학교에서 겪게 될 갈등상황을 미리 연극으로 체험해보고 멘탈을 강화하는 롤플레잉 강연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연극과 더불어 최근 출연작을 살펴보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같은 인기 드라마에도 출연하시며 종횡무진 TV 매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시네요. 극단에서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배우 프로필에는 없는 숨은 이력이 궁금해지네요.
제가 원래는 SBS 프로덕션에서 2년간 PD로 일했어요. 그때 맡았던 프로그램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여고 시절> 그리고 교양프로그램<좋은 아침> 이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대학로의 연극계로 뛰어들었죠. 1년에 많게는 여덟 편의 공연을 한 적도 있지만, 연극만을 쭉 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어요. 교통카드 한 장이 전부일 때도 있었죠.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도 해야 계속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고, 선배들에게 매체 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다녔죠. 그러던 중 한 선배가 캐스팅 디렉터의 연락처를 줬어요. 그분들께 프로필을 보내드렸더니 바로 연락이 왔어요. 운이 좋았죠. 그렇게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오디션을 보고 강유언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그 후로 <계백>, <꽃들의 전쟁>에서 드라마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드라마 데뷔를 하자마자 연달아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연극배우로서는 몇 년 정도의 경력을 쌓고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하신 건가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기를 해왔어요.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을 빼면, 첫 캐스팅이 됐을 때의 연기경력은 한 3년 정도 됐겠네요. 사실 캐스팅 된 것만 말해서 그렇지, 첫 캐스팅까지만 해도 오디션에 60번은 넘게 떨어진 것 같아요. 당시 수많은 드라마 및 영화 오디션에서 ‘연기 톤이 오버스럽다’ 또는 ‘연극적이다’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매체에서의 연기는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이죠.
아직도 ‘더 자연스러운 연기’는 제게 숙제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끊임없이 배워요. 그중에서 송강호라는 배우를 참 좋아하는데, 이분의 연기는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전혀 어색함이 없죠. 그래서 <살인의 추억>을 열 번 넘게 보면서 ‘내가 가장 잘 구사하는 말투를 써야 진실된 연기가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경상도 출신인데, 제가 한 현대물 연기를 쭉 보니 어쭙잖은 표준말을 쓰면서 연기를 했더라고요. 그게 제 함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연기에서도 내 말투 자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연기하려 노력해요.
연기 경력이 15년이나 되셨는데도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분석하시네요.
저를 잃지 않기 위한 고집이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기반이 다져지려면 최소 10년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물아홉, 제가 극단<백수광부> 오디션에 합격 후 신입 단원 파티를 할 때였어요. 현재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계시기도 한 이성열 극단 대표님이 “정민아 10년 뒤에 보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진짜 배우가 만들어지는 데 10년은 걸린다는 뜻이었죠. 지금 제가 아무리 인지도 없는 배우, 생계형 배우라 치더라도 이제 와서 15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그 순간 저 자신은 사라질 테니까요.
“정민아. 대구에 연기학원이 생겼다는데, 가서 시험 한번 봐”
“무슨 연기는 연기야? 해본 적도 없는데”
“해본 적 없으니까 해보는 거지!”
열일곱 살의 박정민은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오디션장으로 들어섰다. 사미자, 채시라 등의 대배우가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는 자리에서 그는 당차게 합격했다. 그곳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 후, 교내 동아리 활동까지 병행하며 연기에 물이 올랐고 1994년, 그는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송년특집 방송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범죄 수사를 소재를 다룬 당대 최대 인기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이었다. 방송 후, 대구시 내에서는 박정민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됐다. 그는 그렇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왜 대학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연기가 아닌, PD의 길로 진로를 변경하셨나요?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대학 시절 제가 조교로 있었던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당시 그분은 모 방송국의 인기 드라마 총 연출을 맡고 계신 유명한 감독님이셨죠. 그런데 “여기 프로필 쌓여있는 거 보이지? 얘들도 못 뽑아주고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군대 갔다 와서 찾아오라는 말씀 한마디만 믿고 찾아갔는데, 단칼에 거절당해서 어린 마음에 굉장히 상처가 컸죠. 그리고 그 당시는 매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잠시 방황했어요.
그때가 2002년도쯤이었는데, 외주 제작사가 엄청 많이 생기는 시기였어요. 그렇다 보니 프로덕션은 많은데 PD가 없어서 수요가 늘었죠. 때마침 ‘KIPA 디렉터스쿨’이라는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디렉터전문 교육기관에서 전국에서 35명을 뽑아 PD로 양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죠. 그렇게 3차 오디션까지 합격해 연출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3년 정도 PD로 일하게 됐습니다.
PD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해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다시 배우의 길을 선택하셨네요.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후회는 없으신가요?
PD로 일하면서 외모와 직급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방송계에 회의감을 느끼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연극영화과를 졸업해서 왜 카메라 뒤에 있을까? 다시 카메라 앞에 서려면 먼저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물론 공백기도 있었어요. 1년간 연기학원의 강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배우는 것만큼이나 가르치는 것도 자기 수련이 됐죠.
그 후, 제 은사님이신 장두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연기를 배우며 본격 적으로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내가 진짜 웃을 수 있는 직업은 배우였다는 것을 실감했죠. 방송국처럼 대학로에도 물론 배우, 연출, 스텝들 모두 있지만, 돈이 아닌 오직 예술로 엮여있기에 선후배만 있지 계급이나 직급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곳의 배우들은 ‘배우의 인생은 항상 굴곡이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항상 동등하게 대했죠.
PD로서 카메라 뒤편에 서 있다가 다시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네.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로로 향한 건데 그곳에서 라이브 연기의 참맛을 알아버렸죠. 영화<대부>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알파치노는 지금도 맨해튼의 연극 무대 위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하고 있어요. “나에게 영화는 아르바이트다. 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영화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연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죠. 저 역시 이 말에 공감합니다. 연극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끼죠. 확실히 연극은 카메라 앞에 서는 매체 연기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배우 박정민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 궁금하네요.
드라마는 인물 분석을 심도 있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카메라 연기는 촬영 후 편집을 통해 완성되다 보니, 연기를 순서대로 하지 않기에 순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연기라고 봐야 해요. 또 현장에서 대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배우들의 순발력도 매우 중요하죠.
연극은 몇 달 동안 극본, 연출가, 배우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워서 각 역할을 최고도에 올려놓은 후에 무대 위에 서죠. 역할에 흠뻑 빠져 흐름을 타야 하는 연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두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그 배역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게 제가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이자 라이브의 묘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요. 배우의 관점에서 봤을 때, TV 드라마와 연극은 어떤 차이가 있죠?
영화<파파로티>를 촬영할 때였어요. 한 선배님께서 “정민 씨는 연극배우신가 봐요? 영화에서는 잘 못 본 것 같아서”라고 하시길래, 저도 궁금해져서 “선배님은 왜 연극을 안 하세요?” 여쭸더니,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기긴 한데, 저는 제 연기가 들킬까 봐 연극을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정민 씨처럼 연극을 하는 분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하셨죠. 그만큼 연극이라는 작업은 카메라 연기와는 분명히 다른 장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연기 방식 외에도 다양한 차이점이 있죠.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회를 제작하는데 통상적으로 2주가 걸립니다. 그런데, 장편 영화는 적게는 1년, 길게는 10년씩 찍기도 하죠. 또 TV 드라마는 시청률이 목표인 만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극본을 쓰기에 대중적이죠. 하지만,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와 같이 기라성같은 거장들이 남긴 글은 누구의 기준에 맞춰 쓴 글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극대화시켜 표현한 작품이기에 예술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서 배우는 작가가 고뇌를 거듭해 탄생시킨 극본을 보며, 그 속의 인물 심리를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하죠. 작가가 생각하는 인물의 세계를 뛰어넘어야 배우로서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연극 한 편을 위해서 배우가 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과 표현을 넘어선 ‘인간의 핵’을 찾아가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느껴지십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한 해에 대학로로 쏟아지는 배우가 5,000명입니다. 기존 배우들만 4,000명이고요. 요즘 어린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꿈이 배우죠.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소위 “떠야지" 혹은 “돈을 많이 벌어야지" 이런 겉으로만 보이는 목적을 가지는 배우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의식 있는 배우, 진정성 있는 배우가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지도 없는 배우, 특히 연극배우라고 하면 배고픈 직업, 돈 없는 사람,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사회적 시선과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금방 사라져 버리는 배우들도 많아요. 실제로 정식으로 등록된 배우만 2만 명이 넘는데, 활동하는 배우는 2%도 안 되죠. 이 직업을 갖고 평생 배우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적인 보완도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우 포화 상태에서는 연기를 제대로 배운 배우라도 인지도 있는 배우가 되기란 참 어렵겠지만, 올해는 더 열심히 연기하고 활발하게 활동해서 저도 배우로서 조금 더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제 좌우명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포기가 끝이다’ 였는데 이제부터는 좌우명을 좀 바꾸려고 합니다. ‘포기 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올해는 성공 좀 하자!’ 로요. (웃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배우라는 직업은 시공간을 초월해 다른 인물을 살아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연기를 위해서는 더욱 진실되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문화예술계에 간혹 법 위에 예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최근 미투 운동으로 불거진 바 있죠.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한 개인의 배우가 잘해서 될 일은 아니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신성한 직업이라는 걸 서로 인지하면서 다 함께 순수한 배우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저를 배우로서 성장시켜주신 많은 은사님이 계십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위해 연기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부터 대학 지도교수님 그리고 <백수광부> 이성열 연출가님, 극단 선배님들 그리고 연극계의 선후배, 동료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글 손시현 / 사진 박진호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방송국 PD, 배우가 되다 “연기를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박정민
‘백수광부'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나오는 인물로,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동명의 극단에서 12년째 몸담은 박정민은 한때 촉망받던 PD였으며, 현재는 교육 연극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수많은 연극 속 인물로 15년을 살아온 그가 말하는 진짜 연기란 무엇일까? 스크린과 TV에서도 만날 수 있으나, 여전히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박정민이 말하는 ‘배우'로서 살아온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하시는 일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저는 12년째 <백수광부>라는 극단에서 배우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2년부터는 <산타클로스>라는 교육 극단의 대표를 맡고 있죠. 주로 극단 소속으로 연극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드라마와 뮤지컬 활동을 해왔는데, 최근 정만식, 김병춘, 김민상 배우가 주축으로 있는 <바를 정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어요. 앞으로는 소속사를 통해 더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대표로 계신 교육극단 <산타클로스>로는 주로 어떤 공연을 하나요?
<산타클로스>는 강연을 하는 극단이에요. 교육 연극, 교육 뮤지컬, 롤플레잉 등의 공연을 만들어서 교육자 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어요. 그 시작은 2012년이었어요. 그때,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죠. 그래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학교폭력 근절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연극배우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들이 있겠냐?”는 의뢰를 받고, 미팅했죠.
제가 “보통은 1인 강연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한 사람이 말로만 전달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연극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입체식 강의로 전환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리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다룬 교육 연극을 만들어 교장 선생님들 400분을 대상으로 두 번만 시험 강연을 해보기로 했는데, 평점이 98점 이상 나왔죠. 그래서 현재까지 120회가 넘는 강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장, 서기관, 교감, 장학사 등 고위급 관리자들이 학교에서 겪게 될 갈등상황을 미리 연극으로 체험해보고 멘탈을 강화하는 롤플레잉 강연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연극과 더불어 최근 출연작을 살펴보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같은 인기 드라마에도 출연하시며 종횡무진 TV 매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시네요. 극단에서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배우 프로필에는 없는 숨은 이력이 궁금해지네요.
제가 원래는 SBS 프로덕션에서 2년간 PD로 일했어요. 그때 맡았던 프로그램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여고 시절> 그리고 교양프로그램<좋은 아침> 이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대학로의 연극계로 뛰어들었죠. 1년에 많게는 여덟 편의 공연을 한 적도 있지만, 연극만을 쭉 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어요. 교통카드 한 장이 전부일 때도 있었죠.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도 해야 계속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고, 선배들에게 매체 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다녔죠. 그러던 중 한 선배가 캐스팅 디렉터의 연락처를 줬어요. 그분들께 프로필을 보내드렸더니 바로 연락이 왔어요. 운이 좋았죠. 그렇게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오디션을 보고 강유언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그 후로 <계백>, <꽃들의 전쟁>에서 드라마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드라마 데뷔를 하자마자 연달아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연극배우로서는 몇 년 정도의 경력을 쌓고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하신 건가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기를 해왔어요.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을 빼면, 첫 캐스팅이 됐을 때의 연기경력은 한 3년 정도 됐겠네요. 사실 캐스팅 된 것만 말해서 그렇지, 첫 캐스팅까지만 해도 오디션에 60번은 넘게 떨어진 것 같아요. 당시 수많은 드라마 및 영화 오디션에서 ‘연기 톤이 오버스럽다’ 또는 ‘연극적이다’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매체에서의 연기는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이죠.
아직도 ‘더 자연스러운 연기’는 제게 숙제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끊임없이 배워요. 그중에서 송강호라는 배우를 참 좋아하는데, 이분의 연기는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전혀 어색함이 없죠. 그래서 <살인의 추억>을 열 번 넘게 보면서 ‘내가 가장 잘 구사하는 말투를 써야 진실된 연기가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경상도 출신인데, 제가 한 현대물 연기를 쭉 보니 어쭙잖은 표준말을 쓰면서 연기를 했더라고요. 그게 제 함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연기에서도 내 말투 자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연기하려 노력해요.
연기 경력이 15년이나 되셨는데도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분석하시네요.
저를 잃지 않기 위한 고집이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기반이 다져지려면 최소 10년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물아홉, 제가 극단<백수광부> 오디션에 합격 후 신입 단원 파티를 할 때였어요. 현재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계시기도 한 이성열 극단 대표님이 “정민아 10년 뒤에 보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진짜 배우가 만들어지는 데 10년은 걸린다는 뜻이었죠. 지금 제가 아무리 인지도 없는 배우, 생계형 배우라 치더라도 이제 와서 15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그 순간 저 자신은 사라질 테니까요.
“정민아. 대구에 연기학원이 생겼다는데, 가서 시험 한번 봐”
“무슨 연기는 연기야? 해본 적도 없는데”
“해본 적 없으니까 해보는 거지!”
열일곱 살의 박정민은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오디션장으로 들어섰다. 사미자, 채시라 등의 대배우가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는 자리에서 그는 당차게 합격했다. 그곳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 후, 교내 동아리 활동까지 병행하며 연기에 물이 올랐고 1994년, 그는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송년특집 방송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범죄 수사를 소재를 다룬 당대 최대 인기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이었다. 방송 후, 대구시 내에서는 박정민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됐다. 그는 그렇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왜 대학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연기가 아닌, PD의 길로 진로를 변경하셨나요?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대학 시절 제가 조교로 있었던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당시 그분은 모 방송국의 인기 드라마 총 연출을 맡고 계신 유명한 감독님이셨죠. 그런데 “여기 프로필 쌓여있는 거 보이지? 얘들도 못 뽑아주고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군대 갔다 와서 찾아오라는 말씀 한마디만 믿고 찾아갔는데, 단칼에 거절당해서 어린 마음에 굉장히 상처가 컸죠. 그리고 그 당시는 매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잠시 방황했어요.
그때가 2002년도쯤이었는데, 외주 제작사가 엄청 많이 생기는 시기였어요. 그렇다 보니 프로덕션은 많은데 PD가 없어서 수요가 늘었죠. 때마침 ‘KIPA 디렉터스쿨’이라는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디렉터전문 교육기관에서 전국에서 35명을 뽑아 PD로 양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죠. 그렇게 3차 오디션까지 합격해 연출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3년 정도 PD로 일하게 됐습니다.
PD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해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다시 배우의 길을 선택하셨네요.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후회는 없으신가요?
PD로 일하면서 외모와 직급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방송계에 회의감을 느끼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연극영화과를 졸업해서 왜 카메라 뒤에 있을까? 다시 카메라 앞에 서려면 먼저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물론 공백기도 있었어요. 1년간 연기학원의 강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배우는 것만큼이나 가르치는 것도 자기 수련이 됐죠.
그 후, 제 은사님이신 장두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연기를 배우며 본격 적으로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내가 진짜 웃을 수 있는 직업은 배우였다는 것을 실감했죠. 방송국처럼 대학로에도 물론 배우, 연출, 스텝들 모두 있지만, 돈이 아닌 오직 예술로 엮여있기에 선후배만 있지 계급이나 직급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곳의 배우들은 ‘배우의 인생은 항상 굴곡이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항상 동등하게 대했죠.
PD로서 카메라 뒤편에 서 있다가 다시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네.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로로 향한 건데 그곳에서 라이브 연기의 참맛을 알아버렸죠. 영화<대부>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알파치노는 지금도 맨해튼의 연극 무대 위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하고 있어요. “나에게 영화는 아르바이트다. 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영화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연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죠. 저 역시 이 말에 공감합니다. 연극 무대 위에 설 때 살아있음을 느끼죠. 확실히 연극은 카메라 앞에 서는 매체 연기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배우 박정민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 궁금하네요.
드라마는 인물 분석을 심도 있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카메라 연기는 촬영 후 편집을 통해 완성되다 보니, 연기를 순서대로 하지 않기에 순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연기라고 봐야 해요. 또 현장에서 대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배우들의 순발력도 매우 중요하죠.
연극은 몇 달 동안 극본, 연출가, 배우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워서 각 역할을 최고도에 올려놓은 후에 무대 위에 서죠. 역할에 흠뻑 빠져 흐름을 타야 하는 연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두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그 배역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게 제가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이자 라이브의 묘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요. 배우의 관점에서 봤을 때, TV 드라마와 연극은 어떤 차이가 있죠?
영화<파파로티>를 촬영할 때였어요. 한 선배님께서 “정민 씨는 연극배우신가 봐요? 영화에서는 잘 못 본 것 같아서”라고 하시길래, 저도 궁금해져서 “선배님은 왜 연극을 안 하세요?” 여쭸더니,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기긴 한데, 저는 제 연기가 들킬까 봐 연극을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정민 씨처럼 연극을 하는 분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하셨죠. 그만큼 연극이라는 작업은 카메라 연기와는 분명히 다른 장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연기 방식 외에도 다양한 차이점이 있죠.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회를 제작하는데 통상적으로 2주가 걸립니다. 그런데, 장편 영화는 적게는 1년, 길게는 10년씩 찍기도 하죠. 또 TV 드라마는 시청률이 목표인 만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극본을 쓰기에 대중적이죠. 하지만,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와 같이 기라성같은 거장들이 남긴 글은 누구의 기준에 맞춰 쓴 글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극대화시켜 표현한 작품이기에 예술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서 배우는 작가가 고뇌를 거듭해 탄생시킨 극본을 보며, 그 속의 인물 심리를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하죠. 작가가 생각하는 인물의 세계를 뛰어넘어야 배우로서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연극 한 편을 위해서 배우가 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과 표현을 넘어선 ‘인간의 핵’을 찾아가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느껴지십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한 해에 대학로로 쏟아지는 배우가 5,000명입니다. 기존 배우들만 4,000명이고요. 요즘 어린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꿈이 배우죠.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소위 “떠야지" 혹은 “돈을 많이 벌어야지" 이런 겉으로만 보이는 목적을 가지는 배우는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의식 있는 배우, 진정성 있는 배우가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지도 없는 배우, 특히 연극배우라고 하면 배고픈 직업, 돈 없는 사람,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사회적 시선과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금방 사라져 버리는 배우들도 많아요. 실제로 정식으로 등록된 배우만 2만 명이 넘는데, 활동하는 배우는 2%도 안 되죠. 이 직업을 갖고 평생 배우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적인 보완도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우 포화 상태에서는 연기를 제대로 배운 배우라도 인지도 있는 배우가 되기란 참 어렵겠지만, 올해는 더 열심히 연기하고 활발하게 활동해서 저도 배우로서 조금 더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제 좌우명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포기가 끝이다’ 였는데 이제부터는 좌우명을 좀 바꾸려고 합니다. ‘포기 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올해는 성공 좀 하자!’ 로요. (웃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배우라는 직업은 시공간을 초월해 다른 인물을 살아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연기를 위해서는 더욱 진실되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문화예술계에 간혹 법 위에 예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최근 미투 운동으로 불거진 바 있죠.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한 개인의 배우가 잘해서 될 일은 아니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신성한 직업이라는 걸 서로 인지하면서 다 함께 순수한 배우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저를 배우로서 성장시켜주신 많은 은사님이 계십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위해 연기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부터 대학 지도교수님 그리고 <백수광부> 이성열 연출가님, 극단 선배님들 그리고 연극계의 선후배, 동료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글 손시현 / 사진 박진호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