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1990년대의 대구 신천
(사진출처=손명수)
신천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시작하여 북구의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매년 여름이면 시민들과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되며,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들어서는 만남의 장이 된다. 또 신천의 서쪽 둑에는 신천대로가, 동쪽 둑에는 신천동로가 있어, 대구의 중요한 교통 시설도 되고 있어 대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천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조성된 하천이 아니었다. 예쁜 꽃길과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있는 오늘날의 신천을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로 폐수가 흐르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던 1970년대의 신천이 바로 그때이다. 신천의 물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사진출처=손명수)
물난리가 심했던 조선 정조 2년, 대구판관 이서(李逝)의 사재로 제방을 새로 쌓아 물줄기를 돌려 탄생한 곳이 바로 신천이라 하여, ‘새로운 하천’이라는 뜻의 신천(新川)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1960년대 말 이전까지의 신천은 송어들이 노닐 만큼 맑은 물을 자랑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폐수만이 흐르는 오염된 하천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많은 양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신천으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홍수를 대비하며 식수까지 공급하던 신천의 기능, 그리고 아름다웠던 추억까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1980년대, 유해곤충의 집단 서식지가 되어버린 신천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하천이 되고야 말았다.
(사진출처=손명수)
(사진출처=손명수)
1990년대에 들어서자 맑은 물이 흐르던 옛 신천에 대한 추억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신천 오염의 심각성을 느낀 대구시가 1997년부터 신천 환경사업소의 처리된 방류수를 하루 10만t씩 상동교 지점으로 역류시켜 신천 유지수로 사용했다. 본격적으로 하천 정비 기본계획을 세운 대구시는 2001년 신천 환경사업소의 처리수와 금호강물을 1:1 비율로 혼합해 신천 유지수로 사용했고, 오늘날까지 신천의 수질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점차 맑은 물과 함께 친수·문화·레저공간이 조성되면서 대구 시민들도 예전처럼 신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잘 닦여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꽃길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 등 인파가 몰려들었다. 또 매해 겨울이면 중구 대봉교 밑 생활 체육 광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고 있으며, 여름이면 이곳이 수영장으로 탈바꿈해 많은 시민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대구시의 신천 살리기 프로젝트를 거듭해 재탄생한 이곳은 대구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장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출처=손명수)
(사진출처=손명수)
신천의 물이 맑아지면서 사라졌던 천연기념물 수달도 다시 나타났다. 수달은 2005년 처음 지역 하천에서 사는 것으로 확인됐었다. 특히, 신천은 청둥오리, 왜가리, 해오라기 등의 먹이가 풍부해 조류서식지로 큰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천을 생명의 강’을 만들고자 했던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대구 신천은 2025년까지 1,660억이 투입되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더 확실한 대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사진 손명수 / 글 에스카사 편집부
사진으로 보는 1990년대의 대구 신천
(사진출처=손명수)
신천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시작하여 북구의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매년 여름이면 시민들과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되며,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들어서는 만남의 장이 된다. 또 신천의 서쪽 둑에는 신천대로가, 동쪽 둑에는 신천동로가 있어, 대구의 중요한 교통 시설도 되고 있어 대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천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조성된 하천이 아니었다. 예쁜 꽃길과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있는 오늘날의 신천을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로 폐수가 흐르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던 1970년대의 신천이 바로 그때이다. 신천의 물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사진출처=손명수)
물난리가 심했던 조선 정조 2년, 대구판관 이서(李逝)의 사재로 제방을 새로 쌓아 물줄기를 돌려 탄생한 곳이 바로 신천이라 하여, ‘새로운 하천’이라는 뜻의 신천(新川)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1960년대 말 이전까지의 신천은 송어들이 노닐 만큼 맑은 물을 자랑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폐수만이 흐르는 오염된 하천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많은 양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신천으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홍수를 대비하며 식수까지 공급하던 신천의 기능, 그리고 아름다웠던 추억까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1980년대, 유해곤충의 집단 서식지가 되어버린 신천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하천이 되고야 말았다.
(사진출처=손명수)
(사진출처=손명수)
1990년대에 들어서자 맑은 물이 흐르던 옛 신천에 대한 추억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신천 오염의 심각성을 느낀 대구시가 1997년부터 신천 환경사업소의 처리된 방류수를 하루 10만t씩 상동교 지점으로 역류시켜 신천 유지수로 사용했다. 본격적으로 하천 정비 기본계획을 세운 대구시는 2001년 신천 환경사업소의 처리수와 금호강물을 1:1 비율로 혼합해 신천 유지수로 사용했고, 오늘날까지 신천의 수질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점차 맑은 물과 함께 친수·문화·레저공간이 조성되면서 대구 시민들도 예전처럼 신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잘 닦여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꽃길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 등 인파가 몰려들었다. 또 매해 겨울이면 중구 대봉교 밑 생활 체육 광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고 있으며, 여름이면 이곳이 수영장으로 탈바꿈해 많은 시민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대구시의 신천 살리기 프로젝트를 거듭해 재탄생한 이곳은 대구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장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출처=손명수)
(사진출처=손명수)
신천의 물이 맑아지면서 사라졌던 천연기념물 수달도 다시 나타났다. 수달은 2005년 처음 지역 하천에서 사는 것으로 확인됐었다. 특히, 신천은 청둥오리, 왜가리, 해오라기 등의 먹이가 풍부해 조류서식지로 큰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천을 생명의 강’을 만들고자 했던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대구 신천은 2025년까지 1,660억이 투입되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더 확실한 대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사진 손명수 / 글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