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문화가 되살아나야
장영진 『장어박사 장박삽니다』 저자 / 삼수장어 대표
팔공산과 비슬산이 어깨를 겯듯 둘러싸고 금호강과 낙동강에 포대기처럼 감싸 흐르는 대구는 예부터 옹기종기 오순도순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유사 이래 대구는 족히 역사의 중심이었고 늘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정이 깊고 인정이 푸근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에 삶의 터를 다져 온 우리 조상들은 대구 사람의 기질과 특장을 이루며, 숱한 변화와 창조를 통해 오늘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왔다.
(출처:본사취재)
일찍이 조선 시대 사람 순암 안정복은 경상도의 풍속과 사람과 물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경상도 풍속은 투박하여 세련미가 적다.” ‘여유당전서’의 영남 인물고'에서 다산 정약용은 “산천의 생김새가 다른 도와 달라 인물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많고 하는 일들이 아주 견실하고 삼세하며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의 음식 문화는 지리적 특성과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 맵고 짜고 단순하다는 세인의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영향인지 연면한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그 웅숭깊고 넉넉하고 다양한 음식 문화가 묻혀 있거나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나름대로 지역적 사정이 있겠지만 향토의음식문화를 재조명하고 재창조하기 위한 시도로 대구 지역 오랜 맛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전통 음식관련 서적을 살펴보는 것도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대구에는 사백년 전통의 약령시를 기반으로 전국에 약재를 공급해 온 다양한 약용 음식이 있었지만, 지금 그 명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아쉬움이 크다.
최근 대구의 오래된 향토 음식에 관한 각종 문헌을 찾아 더듬고, 여러 유서 깊은 문중과 사찰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대구한의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대구 전통.향토 음식'이 그것인데 대구를 대표할 음식 문화의 재조명을 통해 대구의 음식 문화를 창출하고자 대구광역시의 용역 사업으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우선 대구 지역 전통 음식의 문헌 자료를 살펴보자. 아래의 서적들은 옛 조리서 가운데 대구 경북과 관련된 것들이다. 과거 대구 경북이 같은 생활권이었고 경북 사람들이 대구로 와서 살고 경북 지역의 조리 내용이 대구의 생활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출처:본사취재)
규합총서 閨閤叢書
여성 생활백과인 ‘규합총서'는 빙허각 憑虛閣 이씨 李氏가 1809년 (순조 9)엮은 것이다. 본래 지은이와 제작 연대를 몰랐으나 1939년 ‘빙허각전서 憑虛閣全書’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이 책의 1부작이고 그 지은이도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의 형수임이 밝혀졌다. 그 내용은 주사의(酒食議) ·봉임측(縫紝則)·산가락(山家樂)·청낭결(靑囊訣)·술수략(術數略)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규합총서'의 ‘주사의'에는 장 담그기, 술 빚기, 밥.떡.과줄.반찬 만들기가 수록되어 있다. ‘봉임측'에는 옷 만드는 법, 물들이는 법, 길쌈, 수놓기, 누에 치기 등과 그릇 때우는 법, 불 켜는 등의 모든 잡방이 수록되어 있다. ‘산가락'에는 밭을 갈고 가꾸는 법에서 부터 말∙소∙닭을 기르는 법 등의 농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청낭결'에는 태교 및 아기 기르는 요령과 구급방∙약물 금기 등이 적혀 있다. ‘수술력'에는 정거(거처를 깨끗이 함)하는 법과 부적과 주술로 마귀를 쫓는 방법이 적혀 있어 당대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빙허각은 ‘규합총서 閨閤叢書’를 저술한 목적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 놓고 있다.
무릇 부인이 하는 일이 안방 밖을 나지 아니하므로, 비록 예와 이제 일을 통하는 식견과 남보다 나은 재주가 있더라도, 혹 문자로 표현하여 남에게 보고 듣게 하려 함은, 아름다움을 속에 품어 간직하는 이의 도리가 아니다. 하물며 나의 어둡고 어리석음으로 어찌 스스로 감히 글로 포현하는 방법을 생각하리오마는, 이 책이 비록 많으나 그 귀결점을 구한 즉 이것들이 다 건강에 주의하는 일이요, 집안을 다스리는 중요한 법이라 진실로 일용에 없지 못할 것이요 부녀의 마땅할 바다. 그러므로 마침내 이러써 서를 삼아 집안의 딸과 며늘아기들에게 준다.
위 내용에 따르면 부인은 식견과 재주를 가져야 하고, 아는 바를 문자로 표현하는 것을 삼가고, 가족의 건강과 집안을 다스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규합총서'의 내용과 구성은 실로 다양한데, 음식과 관련된 내용과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두-저식류 관리법(밥, 죽, 미음, 면, 만두∙∙∙)-부식류 관리법(탕, 찜, 구이, 젓갈, 좌반, 회, 적, 나물∙∙∙)-후식류 관리법(떡, 포도차, 매실차, 매화차, 다식, 정과, 약과∙∙∙)-술 종류 관리법(진달래술, 구기자술, 복사꽃술, 소국주, 과하주∙∙∙)-양념류 관리법(장, 초, 기름, 조청의 종류 및 만드는 법)-저장 식품류 관리법(무, 가지 마늘, 고추, 배, 홍시, 포도, 수박, 석류, 복숭아)
음식미디방
그 내용은 주식류(면.만두), 부식류 (국 . 찜 . 채 . 누르미 . 회 . 족편 . 젓갈 . 김치 . 적 . 볶음 . 구이 . 전∙∙∙), 떡류 (인절미 등 11종 35가지), 과정류 (다식 등 9종 18가지), 음청류 (토장법 등 5종 11가지), 술류 (오가피주 등 51종 24가지), 초류 (매자초 등 3종 3가지), 이외 저장 식품으로 채소, 과일, 고기 말리기 . 생선 말리기 . 생선 염장법 등에 관한 것도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부인 장씨는 결혼 당시 내외법이 존재하는 시대였지만 남편 이시명과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하고 동지로서 공경하면서 때를 맞추어 중용의 모범을 보이는 여성 군자로 살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시가와 본가 두 집안을 사회 공동체의 모범이 되는 가문으로 일으켜 세우고 열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낸 점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정부인 안동 장씨는 늘 자녀들에게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가르침으로써 과거 공부보다는 성리학의 학문적 본질을 몸소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도 했다.
안동 장씨는 “착함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해서 주위 사람을 착함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릇 강인함과 온유함을 갖춘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나이 든 사람이나 과부나 고아처럼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성의껏 도왔으며, 만년에 이를수록 재주와 덕행이 드러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본사취재)
수운잡방 需雲雜方
‘수운잡방'은 조선 중종 때 광산 김씨 예안파 탁청정 김유(1481-1552)가 식품 가공에 관해 저술한 책을 말한다. 1986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시한 안동시∙군 지역 전적 문화재 조사로 세간에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수운잡방'은 표지를 포함하여 25매의 한지에 121항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표제 이면에 탁청공 유묵이라고 기재된 한문으로 된 필사본이다. ‘수운잡방'이 필사된 시기는 중국의 ‘거가필용'보다 약 300년 늦고 허균이 쓴 ‘도문대작'에 비해서는 70년 앞섰으며 ‘음식디미방'보다는 110년 정도 앞선 저작이다.
‘수운잡방' 본문은 제 1항에서 86항까지와 제 87항에서 제121항 까지의 2부 체제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앞에서는 술에 사용한 누룩을 국(麴)이나 곡으로 쓰고 뒤에 가서는 곡(曲)으로 쓰고 있어 필체나 표현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편은 김유의 편저이고 뒤편은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이 ‘수운잡방'에는 ‘오천가법'이나 ‘현재 엿도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좋은 법’이라는 글이 있는데 음식 관련 학자들은 ‘수운잡방'을 당시 안동 지방에 널리 이용되어 오던 것을 정리한 독창ㅊ적인 조리로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김치의 한문식 표기로 저(菹)와 침채(沈菜)로 혼용하여 표기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음식의 명칭이 국문학적으로 어떻게 변하천하는가 연대를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활인심방 活人心方
‘활인심방'은 ‘활인심'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퇴계 선생이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활인심서'와 ‘구선활인심법' 같은 이름도 있다. ‘활인심서'는 명나라 고염이라는 사람이 쓴 ‘준생팔전'을 인용한 것이고, ‘구선활인심법'은 명나라 주원장의 아들인 구선이 의학과 선도의 중요 내용을 상하2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퇴계 선생은 ‘구선활인심법’을 친필로 베끼면서 잘못된 글자와 문맥을 바로잡고 편의를 위해 방점을 붙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현재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데 1550년 경주부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과 퇴계 선생이 필사한 친필본이 우리나라에 전한다.
‘구선활인심법'을 지은 구선은 서문을 통해 의가와 선가의 연원을 밝히면서 중화탕과 화기환의 약방문을 밝히고 있다. 중화탕은 심신을 수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무사과 행호사 등 30미를 심화心火와 신수腎水에 달여서 수시로 따뜻한 물로 복용하도록 하였으며 역대 인물들의 양생에 관한 내용을 21조목에 걸쳐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인법은 호흡과 운동으로 온몸의 관절을 조절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거론한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활인심방'에 나오는 각종 음식물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조명을 통해 우리는 보다 웅숭 깊은 음식 문화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글 장영진 『장어박사 장박삽니다』 저자 / 삼수장어 대표
정리 에스카사 매거진
음식 문화가 되살아나야
장영진 『장어박사 장박삽니다』 저자 / 삼수장어 대표
팔공산과 비슬산이 어깨를 겯듯 둘러싸고 금호강과 낙동강에 포대기처럼 감싸 흐르는 대구는 예부터 옹기종기 오순도순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유사 이래 대구는 족히 역사의 중심이었고 늘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정이 깊고 인정이 푸근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에 삶의 터를 다져 온 우리 조상들은 대구 사람의 기질과 특장을 이루며, 숱한 변화와 창조를 통해 오늘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왔다.
(출처:본사취재)
일찍이 조선 시대 사람 순암 안정복은 경상도의 풍속과 사람과 물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경상도 풍속은 투박하여 세련미가 적다.” ‘여유당전서’의 영남 인물고'에서 다산 정약용은 “산천의 생김새가 다른 도와 달라 인물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많고 하는 일들이 아주 견실하고 삼세하며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의 음식 문화는 지리적 특성과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 맵고 짜고 단순하다는 세인의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영향인지 연면한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그 웅숭깊고 넉넉하고 다양한 음식 문화가 묻혀 있거나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나름대로 지역적 사정이 있겠지만 향토의음식문화를 재조명하고 재창조하기 위한 시도로 대구 지역 오랜 맛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전통 음식관련 서적을 살펴보는 것도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대구에는 사백년 전통의 약령시를 기반으로 전국에 약재를 공급해 온 다양한 약용 음식이 있었지만, 지금 그 명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아쉬움이 크다.
최근 대구의 오래된 향토 음식에 관한 각종 문헌을 찾아 더듬고, 여러 유서 깊은 문중과 사찰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대구한의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대구 전통.향토 음식'이 그것인데 대구를 대표할 음식 문화의 재조명을 통해 대구의 음식 문화를 창출하고자 대구광역시의 용역 사업으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우선 대구 지역 전통 음식의 문헌 자료를 살펴보자. 아래의 서적들은 옛 조리서 가운데 대구 경북과 관련된 것들이다. 과거 대구 경북이 같은 생활권이었고 경북 사람들이 대구로 와서 살고 경북 지역의 조리 내용이 대구의 생활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출처:본사취재)
규합총서 閨閤叢書
여성 생활백과인 ‘규합총서'는 빙허각 憑虛閣 이씨 李氏가 1809년 (순조 9)엮은 것이다. 본래 지은이와 제작 연대를 몰랐으나 1939년 ‘빙허각전서 憑虛閣全書’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이 책의 1부작이고 그 지은이도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의 형수임이 밝혀졌다. 그 내용은 주사의(酒食議) ·봉임측(縫紝則)·산가락(山家樂)·청낭결(靑囊訣)·술수략(術數略)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규합총서'의 ‘주사의'에는 장 담그기, 술 빚기, 밥.떡.과줄.반찬 만들기가 수록되어 있다. ‘봉임측'에는 옷 만드는 법, 물들이는 법, 길쌈, 수놓기, 누에 치기 등과 그릇 때우는 법, 불 켜는 등의 모든 잡방이 수록되어 있다. ‘산가락'에는 밭을 갈고 가꾸는 법에서 부터 말∙소∙닭을 기르는 법 등의 농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청낭결'에는 태교 및 아기 기르는 요령과 구급방∙약물 금기 등이 적혀 있다. ‘수술력'에는 정거(거처를 깨끗이 함)하는 법과 부적과 주술로 마귀를 쫓는 방법이 적혀 있어 당대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빙허각은 ‘규합총서 閨閤叢書’를 저술한 목적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 놓고 있다.
무릇 부인이 하는 일이 안방 밖을 나지 아니하므로, 비록 예와 이제 일을 통하는 식견과 남보다 나은 재주가 있더라도, 혹 문자로 표현하여 남에게 보고 듣게 하려 함은, 아름다움을 속에 품어 간직하는 이의 도리가 아니다. 하물며 나의 어둡고 어리석음으로 어찌 스스로 감히 글로 포현하는 방법을 생각하리오마는, 이 책이 비록 많으나 그 귀결점을 구한 즉 이것들이 다 건강에 주의하는 일이요, 집안을 다스리는 중요한 법이라 진실로 일용에 없지 못할 것이요 부녀의 마땅할 바다. 그러므로 마침내 이러써 서를 삼아 집안의 딸과 며늘아기들에게 준다.
위 내용에 따르면 부인은 식견과 재주를 가져야 하고, 아는 바를 문자로 표현하는 것을 삼가고, 가족의 건강과 집안을 다스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규합총서'의 내용과 구성은 실로 다양한데, 음식과 관련된 내용과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두-저식류 관리법(밥, 죽, 미음, 면, 만두∙∙∙)-부식류 관리법(탕, 찜, 구이, 젓갈, 좌반, 회, 적, 나물∙∙∙)-후식류 관리법(떡, 포도차, 매실차, 매화차, 다식, 정과, 약과∙∙∙)-술 종류 관리법(진달래술, 구기자술, 복사꽃술, 소국주, 과하주∙∙∙)-양념류 관리법(장, 초, 기름, 조청의 종류 및 만드는 법)-저장 식품류 관리법(무, 가지 마늘, 고추, 배, 홍시, 포도, 수박, 석류, 복숭아)
음식미디방
그 내용은 주식류(면.만두), 부식류 (국 . 찜 . 채 . 누르미 . 회 . 족편 . 젓갈 . 김치 . 적 . 볶음 . 구이 . 전∙∙∙), 떡류 (인절미 등 11종 35가지), 과정류 (다식 등 9종 18가지), 음청류 (토장법 등 5종 11가지), 술류 (오가피주 등 51종 24가지), 초류 (매자초 등 3종 3가지), 이외 저장 식품으로 채소, 과일, 고기 말리기 . 생선 말리기 . 생선 염장법 등에 관한 것도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부인 장씨는 결혼 당시 내외법이 존재하는 시대였지만 남편 이시명과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하고 동지로서 공경하면서 때를 맞추어 중용의 모범을 보이는 여성 군자로 살았다고 한다. 특히 당시 시가와 본가 두 집안을 사회 공동체의 모범이 되는 가문으로 일으켜 세우고 열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낸 점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정부인 안동 장씨는 늘 자녀들에게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가르침으로써 과거 공부보다는 성리학의 학문적 본질을 몸소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도 했다.
안동 장씨는 “착함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해서 주위 사람을 착함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릇 강인함과 온유함을 갖춘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나이 든 사람이나 과부나 고아처럼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성의껏 도왔으며, 만년에 이를수록 재주와 덕행이 드러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본사취재)
수운잡방 需雲雜方
‘수운잡방'은 조선 중종 때 광산 김씨 예안파 탁청정 김유(1481-1552)가 식품 가공에 관해 저술한 책을 말한다. 1986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시한 안동시∙군 지역 전적 문화재 조사로 세간에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수운잡방'은 표지를 포함하여 25매의 한지에 121항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표제 이면에 탁청공 유묵이라고 기재된 한문으로 된 필사본이다. ‘수운잡방'이 필사된 시기는 중국의 ‘거가필용'보다 약 300년 늦고 허균이 쓴 ‘도문대작'에 비해서는 70년 앞섰으며 ‘음식디미방'보다는 110년 정도 앞선 저작이다.
‘수운잡방' 본문은 제 1항에서 86항까지와 제 87항에서 제121항 까지의 2부 체제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앞에서는 술에 사용한 누룩을 국(麴)이나 곡으로 쓰고 뒤에 가서는 곡(曲)으로 쓰고 있어 필체나 표현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편은 김유의 편저이고 뒤편은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이 ‘수운잡방'에는 ‘오천가법'이나 ‘현재 엿도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좋은 법’이라는 글이 있는데 음식 관련 학자들은 ‘수운잡방'을 당시 안동 지방에 널리 이용되어 오던 것을 정리한 독창ㅊ적인 조리로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김치의 한문식 표기로 저(菹)와 침채(沈菜)로 혼용하여 표기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음식의 명칭이 국문학적으로 어떻게 변하천하는가 연대를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활인심방 活人心方
‘활인심방'은 ‘활인심'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퇴계 선생이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활인심서'와 ‘구선활인심법' 같은 이름도 있다. ‘활인심서'는 명나라 고염이라는 사람이 쓴 ‘준생팔전'을 인용한 것이고, ‘구선활인심법'은 명나라 주원장의 아들인 구선이 의학과 선도의 중요 내용을 상하2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퇴계 선생은 ‘구선활인심법’을 친필로 베끼면서 잘못된 글자와 문맥을 바로잡고 편의를 위해 방점을 붙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현재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데 1550년 경주부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과 퇴계 선생이 필사한 친필본이 우리나라에 전한다.
‘구선활인심법'을 지은 구선은 서문을 통해 의가와 선가의 연원을 밝히면서 중화탕과 화기환의 약방문을 밝히고 있다. 중화탕은 심신을 수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무사과 행호사 등 30미를 심화心火와 신수腎水에 달여서 수시로 따뜻한 물로 복용하도록 하였으며 역대 인물들의 양생에 관한 내용을 21조목에 걸쳐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인법은 호흡과 운동으로 온몸의 관절을 조절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거론한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활인심방'에 나오는 각종 음식물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조명을 통해 우리는 보다 웅숭 깊은 음식 문화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글 장영진 『장어박사 장박삽니다』 저자 / 삼수장어 대표
정리 에스카사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