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다시 피어나다 신근희 작가
신매동에 있는 갤러리 카페, Cafe de L에 들어서자 커피 향보다 진한 꽃향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그 그림 속 꽃과 꼭 닮은 여인이 인사를 건넨다. 신근희 작가의 그림은 명료하면서도 신비로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불교 경전에서부터 심리학의 세계까지 다채로운 세계관 속에 그녀의 작품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화려하지만 소탈한 그녀와 꼭 닮은 작품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처:본사취재)
그림을 다시 그리기 전 공백기간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먼저 그사이의 이야기를 에스카사 독자들에게 전해주세요.
10여 년 전, 저는 대구 화단 중심에서 혈기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였죠.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서 모성애가 작업 욕구를 눌러버려 7년간 푹 쉬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대구 예술 발전소 레지던시로 다시 시작하게 됐죠. 그때 “저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입니다. 다시 시작하려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다녔어요.
그래도 다행히 동료,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돼서 오래 쉰 것에 비해서 빨리 정착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제 방향을 찾고 작업을 열심히 진행 중이에요. 그러다가 이 카페도 함께 열게 되었죠. 저는 이곳을 휴식공간이자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요.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시기까지 어려움도 따르셨겠어요.
저는 청년작가 시절이 없었죠. 그래서 그 점이 참 아쉽기도 하고 저의 모자란 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청년 시기는 하고 싶다고 자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미 시간은 흘러가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마인드 만큼은 청년작가처럼 항상 열정이 넘치게 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2의 인생을 다시 찾은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지금도 작품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하얀 벽을 보고 혼자 고함을 지르는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힘들 때마다 또 신기하게도 동아줄처럼 기회가 꼭 찾아오더라고요. 지난 6월에는 노블레스 매거진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섯분의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과 함께 제 작품도 소개됐죠. 그런데 지방작가인 저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다들 유학파이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기죽지 않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이제는 지방에서도 충분히 예술가로서 꿈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에게 입주할 공간을 제공해서 창작 활동을 지원해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같은 좋은 제도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저도 그런 기회를 통해 다시 설 수 있게 됐으니까요.
(출처:본사취재)
작품활동을 하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알려주세요.
제 작품의 주된 주제는 ‘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예요. 작업의 형식적, 방법적 요소들은 인도 세밀화, 불교 탱화, 중세 기독교화, 이집트 벽화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또 저는 학문적인 곳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학문적으로 받은 영감은 어떻게 작품에 녹여내시나요?
저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좋아하는 학문은 끝까지 파는 편이에요. 한번은 불교 경전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 시작은 대학원을 다닐 때 했던 타이핑 아르바이트였죠. 스님이 법문을 설법하시면 녹취한 것을 그대로 타이핑 하는 일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거였어요. 그런데 그 설법을 계속 듣다 보니 학문으로서 불교 경전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그러다가 관세음보살의 보문품경의 한 구절이 너무 와닿았어요. ‘관세음보살님이 공덕을 성취하셔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러 나라를 노니시면서 중생들을 제도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한마음으로 이 관세음보살님을 숭배하여라.’라는 구절인데, 그 어떤 존재든 그 누군가 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진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제 생각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당시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마침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구제한다는 저 설법 속 한 구절을 접하고 나서부터 관세음보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출처:본사취재)
최근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시나요?
지금 작업 중인 작품 제목이 모두 ‘소피아(Sophia)’예요. 소피아는 제 세례명이기도 하고,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라는 제가 좋아하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이기도 해요. 제 그림 속에 나타내고 싶어 했던 여성상이 그 책 속의 소피아와 똑 닮았어요.
그리고 전시를 할 때마다 갤러리의 작업 노트에 함께 싣는 그 책 속의 한 구절이 있는데, ‘나는 처음이자 끝이요. 귀한자이자 천한 자며, 성녀이자 창녀로다’라는 구절이에요. 저는 평소에 ‘극과 극은 통한다’던가, ‘빛과 어둠은 따로 있지 않다’라는 말에 동의해왔기 때문에 저 구절이 더 와닿았어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을 소피아 시리즈에 더 잘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그림 속의 꽃들은 정물화 개념의 단순한 꽃이 아니라 저의 상상 속 꽃이죠. 그리고 여성이나 저를 꽃으로 의인화한 것이에요. 저는 제 작품으로 제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여자인 게 좋아요. 그렇지만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젠더적인 부분보다는 다분히 섹슈얼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그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어요.
(출처:본사취재)
작품 제목 ‘아니마/아니무스 (ANIMA/ ANIMUS)’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해주세요.
‘아니마/아니무스’는 융의 심리학 용어에서 나오는 말로, 남성 안에 있는 여성적인 성향 혹은 여성 안에 있는 남성적인 성향을 뜻해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요소들이 잘 만나서 융합을 하게 되면 커다란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고, 그게 잘못 융합이 되면 파멸에 치닫는다는 뜻도 있죠. 저 뜻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여성적인 모습과 남성적인 모습을 잘 어우러지도록 표현하고 싶었죠.
조금 더 쉽게 말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애초에 자웅동체처럼 하나였다고 생각하고 제 작품을 바라 보신다면, 작품의 이름과 꽃 그림이 더 쉽게 이해가 될 거예요. 여성(핵과 주름)과 남성(돌기)을 품고 있는 저의 꽃 그림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아니마/아니무스 그 자체예요.
(출처:본사취재)
(출처:본사취재)
앞으로의 각오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작가의 이미지가 작품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저도 꼭 프리다 칼로나 조지아 오키프같이 자기 자신과 작품이 꼭 닮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죠.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도 자기 작품과 많이 닮았어요. 작품과 자신이 떨어져 있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저 자신과 꼭 닮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근데 아직은 제 캐릭터가 아직 제 그림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더 제 그림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제 그림 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 손시현 작가
에스카사 편집부
꽃, 다시 피어나다 신근희 작가
신매동에 있는 갤러리 카페, Cafe de L에 들어서자 커피 향보다 진한 꽃향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그 그림 속 꽃과 꼭 닮은 여인이 인사를 건넨다. 신근희 작가의 그림은 명료하면서도 신비로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불교 경전에서부터 심리학의 세계까지 다채로운 세계관 속에 그녀의 작품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화려하지만 소탈한 그녀와 꼭 닮은 작품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처:본사취재)
그림을 다시 그리기 전 공백기간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먼저 그사이의 이야기를 에스카사 독자들에게 전해주세요.
10여 년 전, 저는 대구 화단 중심에서 혈기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였죠.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서 모성애가 작업 욕구를 눌러버려 7년간 푹 쉬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대구 예술 발전소 레지던시로 다시 시작하게 됐죠. 그때 “저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입니다. 다시 시작하려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다녔어요.
그래도 다행히 동료,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돼서 오래 쉰 것에 비해서 빨리 정착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제 방향을 찾고 작업을 열심히 진행 중이에요. 그러다가 이 카페도 함께 열게 되었죠. 저는 이곳을 휴식공간이자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요.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시기까지 어려움도 따르셨겠어요.
저는 청년작가 시절이 없었죠. 그래서 그 점이 참 아쉽기도 하고 저의 모자란 면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청년 시기는 하고 싶다고 자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미 시간은 흘러가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마인드 만큼은 청년작가처럼 항상 열정이 넘치게 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2의 인생을 다시 찾은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지금도 작품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하얀 벽을 보고 혼자 고함을 지르는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힘들 때마다 또 신기하게도 동아줄처럼 기회가 꼭 찾아오더라고요. 지난 6월에는 노블레스 매거진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섯분의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과 함께 제 작품도 소개됐죠. 그런데 지방작가인 저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다들 유학파이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기죽지 않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이제는 지방에서도 충분히 예술가로서 꿈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에게 입주할 공간을 제공해서 창작 활동을 지원해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같은 좋은 제도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저도 그런 기회를 통해 다시 설 수 있게 됐으니까요.
(출처:본사취재)
작품활동을 하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알려주세요.
제 작품의 주된 주제는 ‘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예요. 작업의 형식적, 방법적 요소들은 인도 세밀화, 불교 탱화, 중세 기독교화, 이집트 벽화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또 저는 학문적인 곳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학문적으로 받은 영감은 어떻게 작품에 녹여내시나요?
저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좋아하는 학문은 끝까지 파는 편이에요. 한번은 불교 경전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 시작은 대학원을 다닐 때 했던 타이핑 아르바이트였죠. 스님이 법문을 설법하시면 녹취한 것을 그대로 타이핑 하는 일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거였어요. 그런데 그 설법을 계속 듣다 보니 학문으로서 불교 경전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그러다가 관세음보살의 보문품경의 한 구절이 너무 와닿았어요. ‘관세음보살님이 공덕을 성취하셔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러 나라를 노니시면서 중생들을 제도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한마음으로 이 관세음보살님을 숭배하여라.’라는 구절인데, 그 어떤 존재든 그 누군가 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진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제 생각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당시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마침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구제한다는 저 설법 속 한 구절을 접하고 나서부터 관세음보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출처:본사취재)
최근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시나요?
지금 작업 중인 작품 제목이 모두 ‘소피아(Sophia)’예요. 소피아는 제 세례명이기도 하고,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라는 제가 좋아하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이기도 해요. 제 그림 속에 나타내고 싶어 했던 여성상이 그 책 속의 소피아와 똑 닮았어요.
그리고 전시를 할 때마다 갤러리의 작업 노트에 함께 싣는 그 책 속의 한 구절이 있는데, ‘나는 처음이자 끝이요. 귀한자이자 천한 자며, 성녀이자 창녀로다’라는 구절이에요. 저는 평소에 ‘극과 극은 통한다’던가, ‘빛과 어둠은 따로 있지 않다’라는 말에 동의해왔기 때문에 저 구절이 더 와닿았어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을 소피아 시리즈에 더 잘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그림 속의 꽃들은 정물화 개념의 단순한 꽃이 아니라 저의 상상 속 꽃이죠. 그리고 여성이나 저를 꽃으로 의인화한 것이에요. 저는 제 작품으로 제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여자인 게 좋아요. 그렇지만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젠더적인 부분보다는 다분히 섹슈얼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그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어요.
(출처:본사취재)
작품 제목 ‘아니마/아니무스 (ANIMA/ ANIMUS)’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해주세요.
‘아니마/아니무스’는 융의 심리학 용어에서 나오는 말로, 남성 안에 있는 여성적인 성향 혹은 여성 안에 있는 남성적인 성향을 뜻해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요소들이 잘 만나서 융합을 하게 되면 커다란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고, 그게 잘못 융합이 되면 파멸에 치닫는다는 뜻도 있죠. 저 뜻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여성적인 모습과 남성적인 모습을 잘 어우러지도록 표현하고 싶었죠.
조금 더 쉽게 말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애초에 자웅동체처럼 하나였다고 생각하고 제 작품을 바라 보신다면, 작품의 이름과 꽃 그림이 더 쉽게 이해가 될 거예요. 여성(핵과 주름)과 남성(돌기)을 품고 있는 저의 꽃 그림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아니마/아니무스 그 자체예요.
(출처:본사취재)
(출처:본사취재)
앞으로의 각오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작가의 이미지가 작품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저도 꼭 프리다 칼로나 조지아 오키프같이 자기 자신과 작품이 꼭 닮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죠.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도 자기 작품과 많이 닮았어요. 작품과 자신이 떨어져 있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저 자신과 꼭 닮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근데 아직은 제 캐릭터가 아직 제 그림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더 제 그림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제 그림 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 손시현 작가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