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고루하다는 인식에 맞서는 옻칠 화가 전인수

옻칠은 뛰어낸 내구성과 광택을 자랑하며 동양권에서는 이미 4천여 년 전부터 칠기의 도료로서 사용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금속, 목기 등 다양한 종류의 도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생활 장식이다.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합성수지도료가 대량 생산되면서 옻칠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국 가정에는 어디나 옻 공예 가구나 각종 장식품이 있었다.
안방의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자개장은 부의 상징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못한 가정이라도 경대나 한 두 점 정도의 조악한 옻 공예 용품은 갖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늘 접하는 생활 일부였기 때문에 옻칠을 예술의 형태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고, 공예가의 영역을 넘어서 순수 예술가로서 옻이라는 재료에 접근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5월 3일부터 12일까지 첼시의 K & P 갤러리에서 열린 전인수의 개인전 'Infinity(무한)'는 수천 년 이어진 전통의 도구를 옻칠의 신선함과 가능성을 접할 좋은 기회였다.

“옻칠은
정직과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 작품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정은 예상대로였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장인의 손길이 깃든 고급 자개장의 일부를 떼어내서 벽에 설치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아, 옻이라는 재료가 이렇게 새로운 회화적인 효과를 나타내는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옻(Natural Lacquer)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한 외국인 관람객들의 관심은 더 눈에 띄었다.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재료의 질감과 색채에 흥미 운운 반응을 나타냈고 연신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필자 역시 작가가 전시회장에서 관객들에게 자주 들었을 혹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왔을 질문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을 가졌지만,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옻을 재료로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마도 순수하게 작가로만 활동해 온 분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일텐데, 나는 뮤지엄에서 다년간 일하면서 작품의 보존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현대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쓴 작품이 많다. 그런데 뮤지엄의 창고에 가면 그런 작품들이 온전하게 보존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작품의 보존과 지속성을 위해 옻이라는 재료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리고 먹을 많이 다루었던 동양화 전공자인 내게 옻이 가진 검은색은 비교할 수 없이 깊은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옻칠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나? 그리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가가 아닌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늦은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던 2011년 가을이다. 홍익대 미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네소타에서도 미대 마스터 과정을 마쳤다. 그 후 다시 뉴욕대로 와서 예술 경영학 과정을 마친 뒤 2004년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7년여를 일했다. 뉴욕을 떠난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었다. 남편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일을 하는데 둘째가 태어난 이후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혼자서 생활할 수 없어서 귀국길을 택했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 온 예술혼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유학 시절에 한 교수님이 결국 너는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 속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교수님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사실은 질문의 순서가 바뀐 셈이지만, 동양 화가로 활동하다가 왜 미국에 와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직장인으로 생활했는가?
한국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나는 예고(서울예고)를 나왔고 홍익대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 미술가로 살았다. 그러면서 속되게 표현하면 볼 것 안 볼것을 많이 봤다.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시기였다. 그러다가 미국에와서 미술관, 뮤지엄들을 방문했다. 그냥 그 공간에 있는 자체만으로 너무 좋을 지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술사,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명성 있는 브루클린 뮤지엄에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옻칠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옻칠 기술부터 배워야 했다. 그동안의 학업과 경력은 전혀 소용되지 않는 새로운 미디엄을 다루는 초보자로 시작했다. 전통 장인들에게서 기본부터 배웠다. 수십년 장인들에 비교하면 작가는 여전히 숙련과 경험을 여전히 쌓아가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창의성이나 표현의 영역 이전에 재료를 얻고 다루는 일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다. 숙련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옻이라는 재료의 까칠함은 여전히 작가에게 고단함을 준다.
쉽게 말해 옻을 잘 타는 체질이다. 마치 나병 환자처럼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극심하게 가려운 증상을 초기에 여러 번 겪으며 심한 고생을 했다. 또한, 재료를 얻는 과정 못지않게 반복과 반복을 거듭하는 밑 작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포질을 하고 바르고, 또 바르고, 붙이고 또 바르고'의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옻 공예 장인 모두가 나이 많은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옻을 이용한 작업의 육체적 강도를 반증하고 있다.
여성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하고 있나?
혼자서 다 한다. 공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회화 작업이기 때문에 혼자서 가능하다. 실제로 장인들의 가구 제작은 여러 명의 조수가 필요하다. 가끔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장이나 서랍에 장식하면 멋있을 것 같다며 가구 제작을 의뢰한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예술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정말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옻은 칠할수록 무겁다. 물을 뿌린 후 말리는 과정에서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무게 때문에 큰 그림도 그리기 어렵다. 여러 가지로 어렵고 제약이 많은 재료다.

"옻칠은 솔직해요.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여줍니다. 거짓이 없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옻칠 화가로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이 있다면?
전통이 진부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과연 내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한다. 옻칠은 무엇보다 기다림의 미학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옻칠이 그렇다. 마음이 급해 서두르면 그르치기에 십상이다. 20번 내외의 칠하고 갈아내는 밑작업 공정이 반복된다. 그런 작업을 거치면서 그 위에 그려질 그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작업을 해 나간다. 그리고 옻칠은 솔직하다.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여준다. 거짓이 없다. 그래서 힘든 작업이지만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나 자신도 빠져드는 것 같다. 나 또 한 작업하면서 나의 작업에 대해 매우 솔직해진다.

전시장에는 최근 작품에서 3-4년 전 작품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7년이란 길지 않은 활동이지만 작가가 변화와 발전 성숙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뭇잎과 꽃을 형상화 한 초기 작품들이 옻작업이 낼 수 있는 화려함과 고유의 미적 효과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시도가 있다면 최근작에서는 거꾸로 기교와 효과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의도한 모습이 보인다. 그랜드 케년의 협곡과 원시의 밤을 표현한 'Flow' 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지난 해 그랜드 케년을 다녀와서 새로운 작업에 몰입했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1500미터나 되는 대협곡을 이룬 웅장함에 매료되어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협곡을 촘촘히 메운 얇은 겹들은 실제로는 인간의 수명이 수천번 다해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장고한 세월의 흔적이다.
그 무수한 겹(레이어)을 표현하기에 반복되어 덧칠된 옻은 최적의 미디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10여년전 보았던 아리조나의 밤하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칠흙같다’는 표현을 흔히 접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깊고 검은 어둠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칠흙같은 어둠을 무한처럼 깊은 명도의 옻만큼 제대로 표현 할 재료가 또 있을까? 작가 역시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서 옻 만큼 올바른 도구는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옻나무에서 어렵게 얻어진 수액인 옻은 자연 그 자체다. 옻은 그림을 그리는 계절과 날씨, 온도,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경화된다. 때문에 나 자신도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자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미세한 환경변화에 정직하게 반응하면서 작품과 나는 작업이 시작되어 끝나는 순간까지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쌓아 나아가는 것 같다.”
글 Won Young Park
에스카사 편집부
전통은 고루하다는 인식에 맞서는 옻칠 화가 전인수
옻칠은 뛰어낸 내구성과 광택을 자랑하며 동양권에서는 이미 4천여 년 전부터 칠기의 도료로서 사용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금속, 목기 등 다양한 종류의 도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생활 장식이다.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합성수지도료가 대량 생산되면서 옻칠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국 가정에는 어디나 옻 공예 가구나 각종 장식품이 있었다.
안방의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자개장은 부의 상징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못한 가정이라도 경대나 한 두 점 정도의 조악한 옻 공예 용품은 갖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늘 접하는 생활 일부였기 때문에 옻칠을 예술의 형태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고, 공예가의 영역을 넘어서 순수 예술가로서 옻이라는 재료에 접근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5월 3일부터 12일까지 첼시의 K & P 갤러리에서 열린 전인수의 개인전 'Infinity(무한)'는 수천 년 이어진 전통의 도구를 옻칠의 신선함과 가능성을 접할 좋은 기회였다.
“옻칠은
정직과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 작품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정은 예상대로였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장인의 손길이 깃든 고급 자개장의 일부를 떼어내서 벽에 설치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아, 옻이라는 재료가 이렇게 새로운 회화적인 효과를 나타내는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옻(Natural Lacquer)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한 외국인 관람객들의 관심은 더 눈에 띄었다.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재료의 질감과 색채에 흥미 운운 반응을 나타냈고 연신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필자 역시 작가가 전시회장에서 관객들에게 자주 들었을 혹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왔을 질문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을 가졌지만,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옻을 재료로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마도 순수하게 작가로만 활동해 온 분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일텐데, 나는 뮤지엄에서 다년간 일하면서 작품의 보존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현대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쓴 작품이 많다. 그런데 뮤지엄의 창고에 가면 그런 작품들이 온전하게 보존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작품의 보존과 지속성을 위해 옻이라는 재료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리고 먹을 많이 다루었던 동양화 전공자인 내게 옻이 가진 검은색은 비교할 수 없이 깊은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옻칠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나? 그리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가가 아닌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늦은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던 2011년 가을이다. 홍익대 미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네소타에서도 미대 마스터 과정을 마쳤다. 그 후 다시 뉴욕대로 와서 예술 경영학 과정을 마친 뒤 2004년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7년여를 일했다. 뉴욕을 떠난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었다. 남편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일을 하는데 둘째가 태어난 이후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혼자서 생활할 수 없어서 귀국길을 택했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 온 예술혼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유학 시절에 한 교수님이 결국 너는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 속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교수님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사실은 질문의 순서가 바뀐 셈이지만, 동양 화가로 활동하다가 왜 미국에 와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직장인으로 생활했는가?
한국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나는 예고(서울예고)를 나왔고 홍익대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 미술가로 살았다. 그러면서 속되게 표현하면 볼 것 안 볼것을 많이 봤다.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시기였다. 그러다가 미국에와서 미술관, 뮤지엄들을 방문했다. 그냥 그 공간에 있는 자체만으로 너무 좋을 지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술사,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명성 있는 브루클린 뮤지엄에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옻칠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옻칠 기술부터 배워야 했다. 그동안의 학업과 경력은 전혀 소용되지 않는 새로운 미디엄을 다루는 초보자로 시작했다. 전통 장인들에게서 기본부터 배웠다. 수십년 장인들에 비교하면 작가는 여전히 숙련과 경험을 여전히 쌓아가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창의성이나 표현의 영역 이전에 재료를 얻고 다루는 일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다. 숙련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옻이라는 재료의 까칠함은 여전히 작가에게 고단함을 준다.
쉽게 말해 옻을 잘 타는 체질이다. 마치 나병 환자처럼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극심하게 가려운 증상을 초기에 여러 번 겪으며 심한 고생을 했다. 또한, 재료를 얻는 과정 못지않게 반복과 반복을 거듭하는 밑 작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포질을 하고 바르고, 또 바르고, 붙이고 또 바르고'의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옻 공예 장인 모두가 나이 많은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옻을 이용한 작업의 육체적 강도를 반증하고 있다.
여성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하고 있나?
혼자서 다 한다. 공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회화 작업이기 때문에 혼자서 가능하다. 실제로 장인들의 가구 제작은 여러 명의 조수가 필요하다. 가끔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장이나 서랍에 장식하면 멋있을 것 같다며 가구 제작을 의뢰한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예술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정말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옻은 칠할수록 무겁다. 물을 뿌린 후 말리는 과정에서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무게 때문에 큰 그림도 그리기 어렵다. 여러 가지로 어렵고 제약이 많은 재료다.
"옻칠은 솔직해요.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여줍니다. 거짓이 없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옻칠 화가로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이 있다면?
전통이 진부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과연 내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한다. 옻칠은 무엇보다 기다림의 미학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옻칠이 그렇다. 마음이 급해 서두르면 그르치기에 십상이다. 20번 내외의 칠하고 갈아내는 밑작업 공정이 반복된다. 그런 작업을 거치면서 그 위에 그려질 그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작업을 해 나간다. 그리고 옻칠은 솔직하다.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여준다. 거짓이 없다. 그래서 힘든 작업이지만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나 자신도 빠져드는 것 같다. 나 또 한 작업하면서 나의 작업에 대해 매우 솔직해진다.
전시장에는 최근 작품에서 3-4년 전 작품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7년이란 길지 않은 활동이지만 작가가 변화와 발전 성숙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뭇잎과 꽃을 형상화 한 초기 작품들이 옻작업이 낼 수 있는 화려함과 고유의 미적 효과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시도가 있다면 최근작에서는 거꾸로 기교와 효과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의도한 모습이 보인다. 그랜드 케년의 협곡과 원시의 밤을 표현한 'Flow' 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지난 해 그랜드 케년을 다녀와서 새로운 작업에 몰입했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1500미터나 되는 대협곡을 이룬 웅장함에 매료되어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협곡을 촘촘히 메운 얇은 겹들은 실제로는 인간의 수명이 수천번 다해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장고한 세월의 흔적이다.
그 무수한 겹(레이어)을 표현하기에 반복되어 덧칠된 옻은 최적의 미디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10여년전 보았던 아리조나의 밤하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칠흙같다’는 표현을 흔히 접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깊고 검은 어둠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칠흙같은 어둠을 무한처럼 깊은 명도의 옻만큼 제대로 표현 할 재료가 또 있을까? 작가 역시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서 옻 만큼 올바른 도구는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옻나무에서 어렵게 얻어진 수액인 옻은 자연 그 자체다. 옻은 그림을 그리는 계절과 날씨, 온도,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경화된다. 때문에 나 자신도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자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미세한 환경변화에 정직하게 반응하면서 작품과 나는 작업이 시작되어 끝나는 순간까지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쌓아 나아가는 것 같다.”
글 Won Young Park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