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5) “왜 그때 같이 좋지는 않을까?”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5) “왜 그때 같이 좋지는 않을까?”


설날 며칠 전, 어머니와 나는 서산에 있는 시장에 나갔단다. 골목마다 명절을 준비하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였어. 튀김 닭집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행인들을 하나둘씩 붙잡고 있었고, 뒤편 건어물집에는 제사상에 올릴 마른 생선을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단다.

어머니는 가을에 수확한 찹쌀과 서리태 콩을 머리에 이고는 시장 쌀가게에 가서 돈으로 바꾸셨단다. 설을 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셨던 거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늘 현금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할 때는 광에 있는 곡물이나 고사리 말린 것을 시장에 내다 팔곤 했어.

돈을 마련하신 어머니는 닭집에 들러 기름에 튀긴 닭강정과 닭발 몇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으셨지. 주인집 아주머니는 멀리서 왔다고 닭강정 한 개를 먹어보라고 내게 주셨어. 살짝 밀가루를 입혀서 기름에 튀긴 닭강정이었지만, 입에 넣는 순간 중독성 있는 맛이 혀를 자극했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한 개를 먹으니 자꾸 더 먹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시장바구니에 들어있는 까만색 봉지에 계속 눈이 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강정이 신문지에 싸여 있었어.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 생각에 먹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추슬렀단다.

“집에 가면 닭발 만들어 줄 테니까 좀 참아라” 어머니는 말씀하셨어. 예전에 선생님께서 학교 수업 중에 좋아하는 음식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었지. 나는 종이에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닭발과 돼지비계로 끊인 김칫국이라고 적었단다. 시장 닭집에서 사 온 닭발을 가마솥에 삶은 다음 고추장과 각종 양념으로 버무린 닭발은 어린 시절 허기진 우리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단다. 닭발은 천원어치만 사도 커다란 봉지에 가득 담아주었기 때문에 식구가 많은 우리 집 아이들 영양간식으로 아주 제격이었단다.


닭강정과 닭발을 산 후 어머니는 근처 정육점에 들리셨어. 큰 집에 갔다가 줄 소고기 두 근과 떡국을 끓일 때 필요한 양지고기 몇 근을 더 구매하셨지. 그리고 돼지비계를 한 봉지 사셨어. 소고기는 명절에나 한두 번 구경할 수 있었던 아주 귀한 음식이었어. 값이 비싸서 아무 때나 살수가 없었던 거야. 돼지비계는 모든 음식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식재료였어. 특히, 뒤뜰 항아리에 있는 김장김치 몇 포기를 꺼내와서 돼지 비계를 넣고 가마솥에 끓이면 아주 맛있는 김치찜이나 김칫국을 만들수가 있었단다. 돼지비계에 익혀진 김치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먹을수록 입맛을 돋웠지.

생선 집은 빼놓을 수 없는 가게였어. 어머니는 동태와 간고등어 몇 마리를 사셨지. 또 서해안에서 채취해 말린 마른 김 몇 톳도 바구니에 담으셨어. 동태와 무를 넣고 가마솥에 끓이면 며칠을 두고 먹을 수가 있었단다. 왕소금에 저린 간고등어는 명절이 되거나 일꾼을 사서 논일을 할 때나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어. 마른 김은 참기름을 발라서 군불을 지핀 아궁이에 살짝 구워 먹거나 날김에다가 깨소금 간장을 찍어서 밥을 얹어 먹을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반찬거리였단다.

드디어 설날 음식을 다 장만하신 어머니는 시장 옷가게에 들리셨단다. 한 골목을 빼곡히 채운 조그만 옷가게들은 서울 남대문 시장
에서 세련된 옷을 도매로 떼어다가 가게 안팎에 가득 걸어놓고 팔았단다. 가게 규모가 작다 보니 몇 겹으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옷을 걸어 두곤 했었지. 설에는 설빔이라고 꼭 새 옷, 새 속옷, 새 양말을 사주시곤 했거든. 가끔 운이 좋으면 운동화도 새로 받기도 했지. 어머니는 아이들 숫자대로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바지 한 벌, 속 옷 한 개, 양말 한 켤레씩 구입하셨어. 그 날은 일 년에 딱 한 번 새 옷을 사 입는 날이었단다.

시장에서 산 맛있는 음식과 설빔으로 장만한 옷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 그날따라 설 준비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완행버스에 앉을 자리를 잡지 못했지. 버스를 탈 때 마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곤 했단다. 한 줄로 서는 일은 없었어. 버스가 터미널 정거장에 들어오게 되면 우르르 몰려가서 얼른 자리를 차지해야 했지. 자리를 잡는 것은 키가 작고 민첩했던 내 몫이었단다.

어머니는 버스를 탈 때마다 “얼른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라”라고 말씀하셨지. 일단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버스 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떤 자리를 잡아야 할지 몰라서 어영부영하는 사이 자리를 다 뺏기고 말았단다. 한 자리만 정하고 달려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여러 자리가있다 보니 순간 망설였던 거야. 자리에 앉지 못했기 때문에 바구니를 버스 바닥에 깔고 앉고는 피곤한 다리를 주무르며 함께 시장에 나온 동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돌아왔단다.

어두운 길을 둥근 달에 의지해서 집에 도착할 무렵, 저 멀리서 어린 동생들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시장에 함께 가질 못했던 거야. 집에서 온종일 어머니가 시장바구니에 뭐를 사서 올까 궁금해서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참고 참았던 닭강정을 먹을 수가 있었어. 그런데 아이들이 많다 보니 몇 개씩 먹으면 까만 시장 봉지에 들어있던 닭강정이 순식간에 사라졌지. 그 때는 별것도 아닌 닭강정이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동생들과 나는 시장바구니에 들어있던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어. 조금 큰 치수를 샀기 때문에 잘 맞는 듯한 느낌은 없었지. 그래도 상관없었어. 새 옷을 받은 거니까. 옷을 입어보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이러저리 살펴보았지. 바지를 한번 접어서 입어야 했지만, 고동색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은 아주 멋져 보였지. 밤에 잘 때 누가 가져갈까 봐 바지를 품 안에 꼭 껴안고는 군불을 때서 뜨거워진 방에서 빨간색 내복을 입고 누었어. 내일 설날 새 바지를 입고 큰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맛있는 떡국과 부침 전을 먹는 꿈을 꾸면서 행복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단다.

엊그제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리던 날 마세라티라는 고급 외제 차를 몰고 가던 운전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단다. 비어있던 오른쪽 차선으로 다리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가서는 왼쪽 차선으로 새치기하려고 한 차선을 막고 서 있었던 거야. 마침 뒤따라 가던 내가 경적을 한 번 울리니까 갑자기 왼쪽으로 향하던 차가 갑자기 내 쪽으로 들이대는 거야. 마치 고의로 사고를 낼 것처럼 달려들었지. 순간 당황해서 오른쪽으로 자동차 핸들을 급하게 돌리기는 했었지. 운전자는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어. 내가 경적을 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어. 자기가 잘못을 했는데도 말이야.

간신히 사고를 피하기는 했지만, 운전해서 뉴저지를 가는 내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단다. 한편으로는 그 운전자의 화나고 불만 섞인 얼굴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렇게 좋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화를 쉽게 내는 것일까?” 나 같으면 그렇게 멋진 차를 운전하고 가면 아주 즐겁기만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배기관이 높은 기종에다가 가죽 의자에 아주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었을 텐데, 뒤에서 경적 한 번 울릴 것이 고의로 사고를 낼 정도로 큰일이었을까?”

다음 날 운전을 하고 출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고급 사륜구동 차량이 경적을 계속 울리면서 가는 거야. 한두 번 경적을 울리는 게 아니고, 거의 운전하면서 거의 몇십초에 한 번씩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거야. 어떤 차가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려고 했는데, 또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고, 어떤 차가 신호가 바뀌어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경적을 울리고, 모든 게 아주 신경질적이었지. 나는 그 고급 차 안에 아주 우락부락하고 고약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가 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

차량이 많이 보니 경적을 연신 울려대며 급하게 운전하던 차가 결국 내옆 차선에 서게 된 거야. 그래서 운전자의 얼굴을 쳐다봤더니 아저씨가 아니었어.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 차의 운전자였어. 내가 옆 차선에 있던 아주머니의 차가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는데, 또 내게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리더라고. 내 차가 그 운전자의 차량 오른쪽에 가까이 있었거든. 그래서 얼굴을 힐끔 쳐다봤더니 또 욕을 퍼부어 대는 거야. 대꾸할 가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허탈하게 웃어줬지.

예전에 처음으로 현대에서 만든 포니 용달차를 탄 적이 있어. 늘 신작로를 달리던 덜컹거리던 완행버스만 타다가 동네 아저씨가 태워준 용달차를 타 보니 승차감이 너무 좋았어. 아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신작로를 달려서 목적지까지 금방 도착하는 거야. 집에 와서 자가용 처음 타 봤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단다.

포니 용달차보다 몇십 배나 좋은 차를 타고 가던 두 운전자는 삶 속에서 어떤 일이 있기에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행복하지 않아 보일까? 물론 나름대로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 두 사람도 어린 시절에 아빠가 크리스마스에 비싸지 않은 장난감을 사 왔을 때 거실을 빙빙 돌며 기뻐하지 않았을까? 추수감사절에 어머니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 온 터키를 구워주었을 때 흥분된 마음으로 온종일 기다리며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이가 들어가면 그때처럼 즐겁지 않은 게 사실이란다. 예전보다 훨씬 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이나 즐거움도 함께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즐거움은 매우 상대적이란다. 마음의 작용인 거야.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갖고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야. 대신, 물건이나 조건의 상대적인 만족감에서 즐거움의 차이가 생긴단다. 사람이 자꾸 좋은 것을 갖고 누리게 되면 만족감이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어. 처음에 좋은 차를 타게되면 몇 달은 기분이 좋다가도 점점 다른 차와 비교하게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지. 집을 사게 되면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설레다가도 금세 “ 방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수납공간이 부족한걸”라며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맨하튼에 가서 수 백 불짜리 맛난 저녁을 매일 먹어도 사람들이 즐거움을 못 느낄 수 있단다. 닭발이나 김칫국에 저녁을 먹으면서도 한없이 행복했는데 말이야.

우리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은 이유는, 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란다.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야. 적게 갖는 것도 삶에 불편함이 따라오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갖게 되면 자칫 작은 것에서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잃을 수가 있어. 중요한 것은 적게 가지든 많이 가지든, 그 순간에 집중하고, 그것이 주는 작은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내게 있는 소중한 것들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는 것이란다.


그림 박종진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