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인의 아내로 미국에 사는 한국 엄마 홍정연(두번째이야기) 우르두어, 영어, 한국어를 하는 우리 아이들
우리 가정은 소위 말하는 다문화 가정이다. 남편은 파키스탄 출신이고 나는 한국인이며 아이들은 이곳 뉴욕에서 태어났다. 카라치에서 유년기를 보낸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를 접하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왜냐면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르두어를 사용하셨고 학교에선 영어로만 공부하니 한국어를 듣거나 사용하는 건 오로지 엄마인 나와 대화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당연히 우르두어나 영어보다 한국어 실력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각 나라의 언어는 단순한 대화 통로를 넘어 그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전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자랄수록 한국어를 통해 엄마의 나라를 알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한글 기초 책들과 한글 배우기 비디오테이프로 꾸준히 가르쳤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어 말하기와 읽기 그리고 간단한 글쓰기 정도의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사명감으로 한국말을 가르친 것 같다. 다만 한국 역사를 제대로 못 가르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해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카라치에도 한글 학교는 있다. 그러나 당시엔 주재원이나 선교사 그리고 개인사업을 하는 분들의『 한국인』 아이들만 입학이 허가되었다.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치다 보니 좀 더 수준 높고 체계적으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 즈음 나는 ‘코트라’에서 통역과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 무역 진흥공사의 주최로 영사님을 비롯해 무역 대표단과 저녁 만찬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일본 대사관에선 일본인 자녀뿐 아니라 편 부모가 일본인인 가정의 아이들까지 무료로 교육한다’는 사례를 소개하고 한글 학교의 안타까운 실정을 설명하며 청원을 했다. 다행히 허가가 인증되어 한글학교의 학칙이 개정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입학하게 되었다. 야호!
과거 이민 1세대의 어르신들은 한국어 교육을 아예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민자의 어려운 삶을 경험하면서, 자식들만큼은 한국인이 아닌 완벽한 미국인처럼 살기를 원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이 틀림없다. 온전한 한국인이건 반쪽 한국인 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젊은 세대의 한인들은 한글학교는 물론이고 학원을 두드리며 국제화 시대의 이중언어-바이링구얼(bi-lingual)은 물론 삼중언어-트리플링구얼(triple-lingual)아이들로 키워낸다.
또 어떤 분은 영어 발음이 안 좋아지니 한국어를 일부러 안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 하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을 기를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정체성(identity)’이었다 엄마와 파키스탄 아버지 그리고 미국 국적인 아이들이 다국적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 해 나갈지 가장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부부가 흔들림 없이 우리의 ‘identity’를 지키다 보니 아이들도 그대로 보고 배운 것 같아 다행이다.
나를 닮으라고 한국 문화를 따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미국의 자유 문화를 금지하지도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런닝맨과 개그콘서트를 즐겨보고 금요일마다 모스크에 가서 이슬람 예배를 본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 무엇인지 서로를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한때 김정은이 남한을 쳐들어오지 못하는 건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심하게 사춘기를 겪는 것과 달리, 파키스탄 아이들은 사춘기가 없다. 우르두어로 ‘사춘기’라는 단어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인 듯 보인다. 결혼을 일찍 시키는 관습에 따라 아이들은 금방 성숙하고 철이 든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게 되고 모든 집안 대소사를 다 접하다 보니 사춘기를 겪을 여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행 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행복하게 자식을 낳고 잘 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중매로 만나지만 연애결혼이 보편화한 나라에 비해 이혼율도 저조하다. 방금 전 큰딸 아이와 통화하면서 “사춘기가 뭔지 알아?” 했더니 “영어로 Puberty or teenage 아닌가?” 한다.
보통 여기는 사춘기가 되면 이슬람의 5대 율법 중의 하나인 ‘라마단’ 금식을 시작할 수 있다. 하루 중 해가 있는 시간만 금식을 한다. 쉬워보일 수도 있는데 더운 날씨에 물 한 모금 안 마신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온전한 한국인이건 반쪽 한국인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때문에 한 달 간의 금식 이후엔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 크게 파티를 하고 축하해 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극기와 인내를 체험하게 되고 그 동안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 물, 음식에 대한 고마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 대한 공감 등을 느끼며 성숙의 길에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이 과정을 거쳐왔고 잘 치뤄 준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 또한, 이곳엔 ‘왕따’라는 단어도 없다. 간혹 여자아이들끼리 예쁜 옷을 입으면 부러워하고 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몰아세우고 괴롭히는 일은 없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왕따 당한 아이들의 사건 뉴스를 볼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참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도 남다르지만, 파키스탄도 그에 못지않다 . 모든 정성을 아이들에게 쏟고 최대한의 지지를 해준다. 특히 아들은 집안을 이끌고 노부모를 모시기 때문에 쏟는 정성은 특별하다. 예전 인도와 분리되기 이전에는 힌두의 영향을 받아 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이 태어나면 바로 죽이거나 태웠고 남편이 죽으면 살아있는 아내를 산 채로 묻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분쟁으로 인해 인도와 독립되고 나서 이슬람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은 ‘딸은 신의 선물’이라는 이슬람 이념에 근거해 딸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다. 그런 문화 안에서 자란 우리 딸이 다행히 공부를 잘해 내년이면 의사가 된다. 아들도 작년에 의대에 입학하게 되어서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쑥스럽지만 한국과 파키스탄 문화의 접목이 결실을 이룬 것이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연재는 다음호로 이어집니다.)
글 홍정연 미국전문 간호사.
에스카사 편집부
파키스탄인의 아내로 미국에 사는 한국 엄마 홍정연(두번째이야기) 우르두어, 영어, 한국어를 하는 우리 아이들
우리 가정은 소위 말하는 다문화 가정이다. 남편은 파키스탄 출신이고 나는 한국인이며 아이들은 이곳 뉴욕에서 태어났다. 카라치에서 유년기를 보낸 우리 아이들은 한국어를 접하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왜냐면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르두어를 사용하셨고 학교에선 영어로만 공부하니 한국어를 듣거나 사용하는 건 오로지 엄마인 나와 대화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당연히 우르두어나 영어보다 한국어 실력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각 나라의 언어는 단순한 대화 통로를 넘어 그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전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자랄수록 한국어를 통해 엄마의 나라를 알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한글 기초 책들과 한글 배우기 비디오테이프로 꾸준히 가르쳤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어 말하기와 읽기 그리고 간단한 글쓰기 정도의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사명감으로 한국말을 가르친 것 같다. 다만 한국 역사를 제대로 못 가르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해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카라치에도 한글 학교는 있다. 그러나 당시엔 주재원이나 선교사 그리고 개인사업을 하는 분들의『 한국인』 아이들만 입학이 허가되었다.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치다 보니 좀 더 수준 높고 체계적으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 즈음 나는 ‘코트라’에서 통역과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 무역 진흥공사의 주최로 영사님을 비롯해 무역 대표단과 저녁 만찬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일본 대사관에선 일본인 자녀뿐 아니라 편 부모가 일본인인 가정의 아이들까지 무료로 교육한다’는 사례를 소개하고 한글 학교의 안타까운 실정을 설명하며 청원을 했다. 다행히 허가가 인증되어 한글학교의 학칙이 개정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입학하게 되었다. 야호!
과거 이민 1세대의 어르신들은 한국어 교육을 아예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민자의 어려운 삶을 경험하면서, 자식들만큼은 한국인이 아닌 완벽한 미국인처럼 살기를 원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이 틀림없다. 온전한 한국인이건 반쪽 한국인 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젊은 세대의 한인들은 한글학교는 물론이고 학원을 두드리며 국제화 시대의 이중언어-바이링구얼(bi-lingual)은 물론 삼중언어-트리플링구얼(triple-lingual)아이들로 키워낸다.
또 어떤 분은 영어 발음이 안 좋아지니 한국어를 일부러 안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 하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을 기를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정체성(identity)’이었다 엄마와 파키스탄 아버지 그리고 미국 국적인 아이들이 다국적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 해 나갈지 가장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부부가 흔들림 없이 우리의 ‘identity’를 지키다 보니 아이들도 그대로 보고 배운 것 같아 다행이다.
나를 닮으라고 한국 문화를 따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미국의 자유 문화를 금지하지도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런닝맨과 개그콘서트를 즐겨보고 금요일마다 모스크에 가서 이슬람 예배를 본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 무엇인지 서로를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한때 김정은이 남한을 쳐들어오지 못하는 건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심하게 사춘기를 겪는 것과 달리, 파키스탄 아이들은 사춘기가 없다. 우르두어로 ‘사춘기’라는 단어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인 듯 보인다. 결혼을 일찍 시키는 관습에 따라 아이들은 금방 성숙하고 철이 든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게 되고 모든 집안 대소사를 다 접하다 보니 사춘기를 겪을 여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행 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행복하게 자식을 낳고 잘 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중매로 만나지만 연애결혼이 보편화한 나라에 비해 이혼율도 저조하다. 방금 전 큰딸 아이와 통화하면서 “사춘기가 뭔지 알아?” 했더니 “영어로 Puberty or teenage 아닌가?” 한다.
보통 여기는 사춘기가 되면 이슬람의 5대 율법 중의 하나인 ‘라마단’ 금식을 시작할 수 있다. 하루 중 해가 있는 시간만 금식을 한다. 쉬워보일 수도 있는데 더운 날씨에 물 한 모금 안 마신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온전한 한국인이건 반쪽 한국인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때문에 한 달 간의 금식 이후엔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 크게 파티를 하고 축하해 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극기와 인내를 체험하게 되고 그 동안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 물, 음식에 대한 고마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 대한 공감 등을 느끼며 성숙의 길에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이 과정을 거쳐왔고 잘 치뤄 준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 또한, 이곳엔 ‘왕따’라는 단어도 없다. 간혹 여자아이들끼리 예쁜 옷을 입으면 부러워하고 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몰아세우고 괴롭히는 일은 없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왕따 당한 아이들의 사건 뉴스를 볼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참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도 남다르지만, 파키스탄도 그에 못지않다 . 모든 정성을 아이들에게 쏟고 최대한의 지지를 해준다. 특히 아들은 집안을 이끌고 노부모를 모시기 때문에 쏟는 정성은 특별하다. 예전 인도와 분리되기 이전에는 힌두의 영향을 받아 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이 태어나면 바로 죽이거나 태웠고 남편이 죽으면 살아있는 아내를 산 채로 묻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분쟁으로 인해 인도와 독립되고 나서 이슬람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은 ‘딸은 신의 선물’이라는 이슬람 이념에 근거해 딸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다. 그런 문화 안에서 자란 우리 딸이 다행히 공부를 잘해 내년이면 의사가 된다. 아들도 작년에 의대에 입학하게 되어서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쑥스럽지만 한국과 파키스탄 문화의 접목이 결실을 이룬 것이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연재는 다음호로 이어집니다.)
글 홍정연 미국전문 간호사.
에스카사 편집부